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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학익진, 거북선의 비밀, 행주치마, 3대 대첩, 비격진천뢰, 총통

by klob 201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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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시작

일본이 20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1592년에 조선을 침략

일본은 100년에 걸친 혼란한 시대를 정리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함-세력가들이 반란을 일으킬까봐 두려워 그들의 불만과 관심을 

돌리기 위해 명나라 정벌을 계획함-명나라로 가려면 조선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길을 내어달라며 조선을 침략함-명나라와의 관계를 중시했던 조선은 이러한 요청을

거절함-200여 년 동안 평화로운 시기로 조선은 군사력이 약해져 있었음. 게다가 일본은

신무기 조총으로 공격함-선조는 한양이 일본군에게 함락되기 직전에 신하들을 이끌고 평양을 거쳐

의주로 피난을 떠남

-선조가 명나라에게 지원군을 요청함-바다에서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의병들이 활약함

이순신의 학익진


거북선의 비밀

1.소나무는 튼튼하고 불에 잘 타지 않아 전투에 유리함

2.나무못 사용. 쇠못은 물이 들어가면 쉽게 녹슬어 배를 약하게 만듦

나무못은 물에 들어가면 팽창되어서 더 단단하게 고정시킴

3. 거북선 등의 뽀족한 송곳과 창검

4. 사방에 달린 화포(앞, 뒤, 옆 사방에 설치하여 어떤 위치에서도 공격이 가능)


의병은 양반에서 노비까지 다양한 신분으로 구성

대표적 인물. 홍의 장군, 곽재우(붉은색의 옷을 입고 의병들을 지휘함)


-명나라 군대가 도착하고 조선과 명나라는 힘을 합쳐 한양을 되찾으려 함.

-권율 장군이 1만여 군사를 행주산성으로 집결시킴-3만여 군사로 행주산성을

일본이 공격함-


행주치마의 유래

행주치마: 여자들이 일할 때 치마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그 위에 덧입는 작은 치마

행주산성에서 권율이 왜병과 싸울 때 성 안에 있던 부녀자들까지 합세하여

치마에 돌을 날랐음. 당시 부녀자들의 공적을 기리는 뜻에는 치마라는 명칭에

'행주'라는 지명을 따서 '행주치마'라고 일컫게 되었다고도 함.


3대 대첩

한산도 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


조총에 맞서기 위한 신무기

비격진천뢰(시한폭탄)


총통



-1593년 일본이 휴전을 제안함-휴전 협상에 일본과 명나라만 참여

-휴전 협상에서 일본과 명나라는 각자 유리한 조건만 내세우다

3년 만에 실패로 끝남-1597년 1월 다시 조선을 공격함(정유재란)

-조선은 이전과 달리 군사 조직과 무기를 정비한 상태-일본이

점점 불리해지는 상황에서 때마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후퇴하기 시작-1598년 전쟁 종료(7년간의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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