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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개혁정치, 통상수교거절정책, 삼정, 경복궁 중건, 병인박해, 제너럴셔먼호사건, 병인양요, 오페르트도굴사건, 신미양요, 정전, 군정, 환정, 양전, 호포제, 사창제, 서원정리

by klob 2019.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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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개혁정치

배경: 국내(세도정치: 극소수의 권세가에 의해 나라가 운영되던 정치 형태. 나라 개판, 과거제 흔들, 매관매직)

정치기강의 문란. 삼정의 문란 - 백성의 삶 피폐. 이때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동학, 천주교 - 급속도로 교세 확장

왕권약화(혼란)-국외: 이양선(서양 배 출몰) -중국, 일본 개항, 러시아가 연해주(두만강 위쪽) 먹음-다음은 우리나라 차례-두려움에 떰-서구 열강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혼란한 상황-이런 상황에서 흥선대원군은 개혁정치를 펼 수밖에 없음 - 개혁정치를 펼친 목적: 왕권 강화, 국가 재정 확립, 민생 안정


정치(왕권강화) - 외척(안동 김씨) 척결, 인재,능력 보고 등용. 비변사 기능 축소(비변사: 국방을 맡아보던 관청. 비변사의 힘이 커지고 의정부(왕을 중심으로 함. 최고 행정 기구)의 힘이 약해짐(왕권 약화).  

따라서, 흥선대원군이 비변사 기능을 축소하고 나중에 폐지까지 함-의정부의 기능 강화-왕권강화 후 이를 법으로 땅땅땅-대전회통(조선시대 법전)을 만듦


경제(국가 재정 확보)

삼정(세 가지 세금 제도: 전정, 군정, 환정)

전정(땅의 크기와 상관없이 땅이 있으면 무조건 세금을 거둠)을 양전(측량할: 양)(땅을 측량해서 땅의 크기 대로 세금을 거둠)으로 바꿈

군정(16-60세, 모든 남자, 노비 제외) - 군대 가는 대신 군포(옷감)을 냄-16세 이하 남자, 이미 죽은 자까지 우겨서 수탈

군정을 호포제(가구(호) 단위로 군포 징수. 양반에게까지 군포를 걷어들임)로 바꿈

환정/환곡(빈민구제책: 싼 이자로 쌀 대출->고리대(이자 이빠이)로 변질)

환정/환곡을 사창제로 바꿈(사창제: 각 마을마다 사창이라는 창고를 두고 백성들에게 곡식을 대여해주던 제도)

환정은 관에서 관리, 사창제는 민간에서 관리

*사창제: 양반 중심의 향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의 하나


서원정리(서원:학교)-좋은 역할을 많이 함 그래서 나라에서 특권을 줌

(땅, 노비, 면세 특권) - 점차 서원이 늘어남-600개까지-점차 특권을 이용해 삥을 뜯기 시작

-지방 관리에게 돈 요구-거절 시, 학자들이 왕에게 상소. 또는 백성을 불러다가 갑질-서원이 갈수록 썩음

600->47개만 남기고 없앰-양반 유생들이 반발


경복궁 중건(목적: 왕실의 위험을 살리기 위해)-강제 노동, 세금 이빠이-백성 불만-경복궁 중건에 돈이 많이 

들어가자 돈을 많이 찍어냄(당백전(당시 사용하던 상평통보의 100배 가치)-그 결과 물가 상승-양반들에게 찾아가

기부 요구(원납전:경복궁 증건을 위해 강제로 거둔 기부금)-묘지림(조상의 묘 주변에 심는 나무)를 무차별 

벌목하여 양반들의 원성을 샀다-토목공사에 강제 동원하여 백성의 불만이 커졌다-백성들이 흥선대원으로부터

등을 돌림.


통상수교거부정책(통상수교:친구하자)

서양애들을 오랑캐로 생각. 

제너럴셔먼호(미국 배)사건(1866)(대동강을 따라 평양에 도착- 통상을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온갖 행패를 부림 - 열 받은 평양 군민이 배를 불태우고 선원들을 죽임


병인양요(프랑스)

원인: 병인박해(프랑스 선교사 9명과 천주교인을 처형/박해한 사건-러시아 남하정책이 원인)

강화도를 통해 쳐들어옴

초기. 프랑스가 유리했으나 문수산성(한성근 장수), 정족산성(양헌수 장수)에서 크게 승리-결국 조선 승

프랑스놈들이 문화재 약탈/외규장각 책 약탈/소실


오페르트(독일 상인) 도굴 사건

남연군(흥선대원군 아버지)의 묘를 도굴


신미양요(미국이 쳐들어옴 1871(제너럴셔먼호 사건 5년 후)

원인: 제너럴셔먼호 사건. 강화도를 통해 쳐들어옴-초지진, 덕진진 점령-광성보에서 어재연 장군이 저항

-미국 퇴각


서양놈들이 지긋지긋한 흥선대원군이 전국 방방곳곳에 척화비를 빵빵빵 세움

"서양 오랑캐와 화친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통상수교거부정책의 

긍정적인 면: 조선의 자주 정신 부각(다 물리침)

부정적인 면: 조선의 근대화가 지연됨


순서:

병인박해-제널러셔먼호 사건-병인양요-오페르트 도굴 사건-신미양요-척화비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

위정척사파(전통적인 사회 체제 고수):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 지지


경복궁 증건(당백전 발행, 원납전 징수)


나라 제도로서 인정에 대한 세를 신포라 했는데

충신과 공신의 자손에게는 모두 신포가 면제되어 있었다

...조정 관리들이 반대하자 "... 지금 그 후손이 면세를 받기

때문에 일반 평민이 법에 정한 세금보다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된다면 충신의 본뜻이 아닐 것이다"

-신분에 따라 군포를 징수하지 않고 호마다 거두게 하였다(호포제)


진실로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으면 비록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나는 용서하지 않겠다. 하물며 서원은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유학자를 제사하는 곳인데

지금은 도적의 소굴이 되어버렸으니 말할 것도 없다

-붕당의 근거지를 정리

-일반 백성들의 환영을 받음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여 재정을 확충

-양반의 횡포를 막아 정부의 지방 통제력을 회복


흥선대원군은 대전회통과 육전조례를 편찬하여 국가의 통치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호포제 실시로 상민들만 내던 군포를 양반층도 부담하게 되어 군포 납부층이 크게 증가하여

국가 재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19/04/15 - [노트] - 조선의 개항, 개화파, 위정척사파, 임오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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